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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세이

잊혀질 듯 남겨진 감정,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감상 / 최은영소설

by 쓸궁리N 2025.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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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의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일상 속 깊이 숨겨진 감정과 관계의 균열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이 작품을 읽고 느낀 여운과 메시지를 독서 후기로 정리해봅니다.

조용히 번져오는 감정의 결 (감정)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는 내내, 나는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리고 한편으로는 따뜻해지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습니다. 최은영 작가는 격한 표현이나 극적인 사건 없이, 인물들의 사소한 말투, 숨길 수 없는 시선, 억눌린 표정만으로도 그들의 감정을 그려냅니다. 이 소설집 속 이야기들은 모두 큰소리로 울부짖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떨림, 숨 막힐 듯한 침묵, 사소한 오해와 후회의 순간들을 통해 감정을 전합니다. 특히 첫 번째 수록작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는,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면서도 그것을 조심스럽게 껴안으려는 인물의 심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는 인물들의 고백이나 대화를 통해 단순한 감정을 넘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보여줍니다. 어떤 감정은 너무 깊어서 표현할 수 없고, 어떤 마음은 너무 희미해서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됩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감정들의 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최은영 작가의 문장은 마치 투명한 거울 같아,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상처와 슬픔을 자연스럽게 비춰보게 만듭니다. 아무리 작은 감정이라도 결코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점이 이 작품집의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인물들이 남긴 흔적, 성장의 여정 (성장)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대부분 상처 입고 불완전하지만, 동시에 성장해 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두 다른 이름을 가지고」의 주인공은 타인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 실패하면서도, 결국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작은 걸음을 내딛습니다. 또 「그 여름」에서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현재가 교차하면서, 과거를 다시 바라보고 치유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최은영 작가가 특히 뛰어난 점은, 성장이라는 과정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인물들이 특별히 대단한 결심이나 사건을 겪지 않더라도,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분명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들은 거창한 성취 대신, 아주 사소한 깨달음과 체념을 통해 성장합니다. 최은영은 성장의 진짜 의미를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독자로서 이러한 성장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나 또한 나의 상처와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 주변 친구이거나, 과거의 나 자신처럼 느껴졌습니다. 최은영 작가는 성장이라는 말을 무겁게 들지 않게 하면서도, 그 과정의 깊이를 결코 가볍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상처 입은 존재들의 따스한 연대 (상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집은 상처를 고립이나 절망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내미는 모습을 통해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두 인물은 과거의 상처를 공유하며, 더 이상 예전처럼 완벽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그 여름」에서는 과거를 숨기려 했던 인물이 결국 진심을 고백하며 관계를 회복해나갑니다. 이 과정은 거창하거나 감동적인 장면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담담한 말 한마디, 우연히 건네는 손짓, 피할 수 없는 눈빛을 통해 표현됩니다. 최은영 작가는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약함이 아니라 용기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의 고통을 알아볼 때 비로소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아주 희미한 빛'이라도 서로에게 비출 수 있다면, 우리는 결코 완전히 어둠 속에 갇히지 않는다는 희망을 느꼈습니다. 최은영은 고통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인간 존재의 따뜻한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슬프지만 아름다웠고, 아팠지만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상처 입은 이들의 고요한 성장과 따스한 연대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집입니다. 최은영 작가의 담백하고 정직한 문장이 마음 깊은 곳을 울리며, 작은 감정조차 소중히 여겨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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